개인

[단상] 친구(들)의 결혼식 사회를 보았다.

세로토닌 2021. 6. 8. 11:18

내가 주선한 소개팅(?)으로 만난 친구들이 결혼을 했다. 당일날 일곱시 반에 일어나서 씻고 화장만 한시간 반 정도 한 것 같다. 전날 미리 이사배의 메이크업 강의를 보면서 순서를 익히고 베이스 여러 겹 올리는 것에 대해서 미리 생각을 해 놨는데, 펜슬로 그린 아이라인이 번진 것 외에는 그래도 꽤 괜찮게 셀프 메이크업이 되어서 만족스러웠다. 남편은 원래 같이 갈 예정이었지만, 최근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 주말에 좀 쉴 수 있도록 아예 미리 불참하는 것으로 했다. 오늘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할 일이 많은데 같이 다녀야 했다면 아마 서로 몇마디 아쉬운 말을 주고받지 않았을까 싶다.

아침에 머리를 따로 해주는 미용실이 많지 않아 결혼식장 근처의 준오헤어에 갔더니 창립기념일이라고 엄청 기분좋게 맞아주면서 이벤트로 적립금도 받았다. 평범한 아이롱 드라이지만 어쨌건 당사자는 빠른 시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남들 앞에 설 만한 모양새를 갖추는 중요한 과정이다. 처음으로 그 친구들 부모님도 뵙고 인사하고, 남자측의 경우 ㅋㅋ 초등학교 동창인데 아버님께서 내 졸업식 사진을 아직도 안 주셔서..ㅋㅋ 사진 달라는 말씀도 드렸다. 신랑과 신부는 원래도 미남 미녀지만 오늘따라 더 예쁘게 잘 꾸몄고, 내가 그들을 보면서 항상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시작할 준비가 다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부를 위해 준비한 신랑의 깜짝 영상메세지도 정말 감동이었다. 이전에 사회 연습을 좀 했지만 대본을 외우진 않아서 대본을 적당히 들고 (앞에 꽃 장식이 있어 적당히 가려져 좋았다) 사람들을 보며 말했는데, 주례 없는 결혼식의 사회자로서 생각보다 더 식장의 분위기에 대한 책임(?)이 느껴져서 조금 후에는 약간 톤도 올라가고 말도 좀더 듣기좋게 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대본에 없는 대사 (특히, 한 파트가 끝나고 ㅇㅇ님의 덕담 정말 감사드립니다 같이 반응하는 것)가 은근히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긴장을 하진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게 나로서는 긴장의 증거가 아니었을까 싶다. 끝나고 사회를 정말 잘 봤다는 얘기를 돌아가면서 들었다. 평범한 남자 사회자가 아니라 여자 사회자고, 약간 아나운서처럼 한 점이 좀더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들과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내면서 서로 고마운 일, 미안한 일들이 종종 있게 마련이다. 이 친구들은 내 결혼식에 와서 부케를 받아주었고, 사례 겸 교통비를 조금 줬었다. 이번에는 내가 주선 사례비로 상품권을, 그리고 끝나고 사회자 사례비를 받았다.(축의금은 당연히 이전에 받은 만큼 그대로 챙겨줬다.) 모르는 사이에서야 당연한 일일 텐데, 아는 사이에선 이런 계산이 민망하면서도, 또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여러모로 머릿속에서 생각이 오갔다. 어쨌건 30 좀 넘는 세월을 살면서 생각한 것은, 이런 부차적인 생각에 집중하기보다는 1차적인 생산을 잘 하고, 열심히 하고, 많이 하는 것이 모든 상황에서 제일 좋다는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골프연습장에서 볼을 치면서 또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때로 생각이 너무 많이 들 때는 그냥 음악을 듣는게 나을 것 같다.